• 2025. 12. 30.

    by. 팔림프세스트의 연구가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실용적인 기록 행위처럼 보인다. 한정된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기존의 텍스트를 지우고, 그 위에 새 텍스트를 쓰는 ‘재사용’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는 흔히 ‘기록 매체의 재활용’으로 이해되곤 한다. 실제로 역사 속 많은 팔림프세스트는 고가의 양피지, 파피루스, 혹은 필기 가능한 다른 기록 매체가 부족하거나 고비용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팔림프세스트를 단지 자원 절약의 실천 또는 물리적 재활용의 산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그 구조의 복합성과 사회적 함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팔림프세스트에는 항상 ‘무엇을 지우고, 왜 지우고, 무엇을 덧씌우는가’에 대한 의도와 판단, 권력과 가치, 기억과 망각의 정치적 구조가 뒤얽혀 있다.
    이 글에서는 팔림프세스트를 단순한 재활용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를 여섯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복합적인 사회적 산물이 되는지를 탐색한다.

     

    단순한 재사용을 넘어서는 의도된 선택 구조

    팔림프세스트는 기록 공간의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이전 기록을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새로운 기록을 선택적으로 얹는 행위다. 이 과정은 물리적 효율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지우는 기준과 덧쓰는 기준이 반드시 작동한다는 점에서, 선택과 판단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예컨대 수도원에서 사용하던 기도문을 지우고 새로운 교리 해설서를 덧씌우는 행위는, 단순히 자원을 절약하려는 실용적 이유만이 아니라, 당시의 신학적 우선순위나 교리 변화, 혹은 시대적 정세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팔림프세스트는 그 자체로 기억의 체계와 이념적 방향성이 구현된 매개물이며, 기술적·물리적 재활용과는 구분되는 판단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기록의 삭제와 재기록은 동일한 권력 작용의 일부다

    팔림프세스트는 단순히 ‘다시 쓴다’는 차원보다, 기존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지운다는 행위 자체에 더 깊은 정치성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삭제는 중립적 행위가 아니라, 기억에서 어떤 내용을 제거하고, 어떤 내용을 보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력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팔림프세스트를 단순한 재활용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

    이러한 맥락에서 팔림프세스트는 물리적 재활용이 아니라, 기록 권력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읽혀야 한다. 어떤 문서가 삭제되고, 어떤 문서가 덧씌워지는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항상 당대의 정치·종교·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팔림프세스트는 단순한 기록 수단의 경제적 활용이 아니라, 권력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 기억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지워진 흔적은 여전히 읽히는 문화적 잔류물이다

    팔림프세스트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지운 기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지워진 텍스트의 잔여 흔적을 다시 읽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팔림프세스트는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텍스트 구조로 재인식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활용이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문화적 특성이다. 지워진 흔적은 삭제된 과거가 아니라, 삭제되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비가시적 층위’로 작동하며, 오히려 삭제의 시도 자체가 중요한 해석 대상이 된다. 따라서 팔림프세스트는 물리적 자원의 재사용 결과를 넘어서, 시간에 따라 의미가 변화하고, 잊히지 않는 흔적이 문맥을 형성하는 역동적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기술적 제약과 기록 행위의 물질성이 반영된 결과물

    기록의 물질적 조건은 단순히 기록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팔림프세스트가 형성되는 방식 그 자체에 깊이 관여한다. 예컨대 양피지는 표면을 긁어내 다시 사용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남는 필압의 흔적이나 섬유의 손상은 기록의 물질적 한계와 조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잔존 요소가 된다.

    이러한 흔적들은 문서가 단순히 ‘다시 쓰인 종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팔림프세스트는 기술적으로 삭제되지 않은 흔적을 품고 있는 문서로서, 하나의 기록 위에 여러 겹의 시간과 행위가 누적된 복합적 구조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과거의 기술 수준, 기록 방식, 재료 이해 등을 반영하는 자료이며, 재활용이라는 행위보다 훨씬 풍부한 맥락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의미의 중첩과 해석의 다층성

    팔림프세스트는 하나의 표면에 복수의 텍스트가 겹쳐져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단선적인 의미 전달 방식이 아니라 **복수의 시간, 맥락, 의도가 겹쳐 있는 해석의 장(場)**으로 기능한다. 표면에 남은 흔적과 그 위에 덧씌워진 텍스트는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상호참조적이고 상호방해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독해자는 두 층위 이상의 의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다중적인 읽기 경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이전 기록 위에 새로운 기록이 있다"는 물리적 사실을 넘어서, 텍스트 간의 순서성, 충돌, 응답, 무시, 또는 재해석의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문화적 맥락을 생성한다. 예컨대 이전 텍스트가 종교적 기도문이고, 이후 텍스트가 행정 문서라면, 둘 사이의 전환은 단지 기능적 쓰임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사회적 권력의 이동, 제도적 재편, 집단 기억의 재구성이 함께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팔림프세스트의 이중적 텍스트 구조는 결과적으로 독해 주체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단일 텍스트를 분석할 때와는 달리, 이중 텍스트 또는 다층 텍스트에서는 기록된 내용뿐 아니라, 지워진 흔적, 그 흔적이 어떤 방식으로 남았는지, 덧씌워진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을 무시하거나 흡수했는지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는 해석자가 단지 ‘내용의 수신자’가 아니라, 기억의 층위를 탐색하는 탐문자이자 해석의 설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구조는 역사적 층위와 현재의 시선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는 비선형적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떤 기록이 어떤 맥락에서 삭제되었고, 그 위에 어떤 이념이나 언어가 얹혔는지를 밝히는 과정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과 권력이 얽힌 복합적 구조를 현재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된다. 이처럼 팔림프세스트는 텍스트 자체보다 텍스트 사이에 놓인 간격, 충돌, 재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하며, 단순한 재활용이 아닌 해석의 다층성과 의미의 복합성을 내포한 문화적 매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간성과 기억의 정치학이 개입된 문화적 구조

    팔림프세스트에는 단순한 실용성과 기록의 반복이 아니라, 기억을 선택적으로 구성하고 역사성을 관리하려는 사회적·정치적 전략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기록이 지워지고 다시 쓰인다는 물리적 절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될 것과 망각될 것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 기록 표면에 직접 반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팔림프세스트는 언제나 시간성과 권력의 교차점에서 작동하는 구조적 표지이다.

    기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사실이 역사로 남고, 어떤 사건이 삭제되거나 은폐되는가는 항상 지배 이데올로기와 제도적 권위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이때 팔림프세스트는 삭제된 층과 남겨진 층을 통해 당대 권력이 어떤 과거를 유지하고자 했으며, 어떤 과거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예컨대 구체제에서 제작된 법령집이 새로운 정권에 의해 표면만 수정된 채 다시 사용된 경우, 그 기록은 과거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 제한적 보존과 선택적 수정이라는 기획된 역사 관리 방식을 드러낸다.

    덧씌움은 단순한 정보의 추가가 아니다. 그것은 종종 새로운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한 서사의 재배열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기록의 시간성은 단순히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과거의 특정 시점을 지우고 다시 끌어와 현재에 맞춰 배열하는 편집적 시간 구성이 된다. 즉, 팔림프세스트의 시간성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기억과 권력이 상호작용하는 시공간적 재편 구조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억 통제는 단순한 삭제나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형성과 유지, 사회적 합의의 형성에도 직결된다. 팔림프세스트가 발생한 시기에는 종종 체제 전환, 이념 교체, 제도 개편과 같은 사회적 전환기적 조건이 존재했으며, 이때 기록을 덧씌우는 행위는 곧 집단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기획된 기억 행위로 기능했다. 다시 말해, 팔림프세스트는 단지 정보의 저장 방식이 아니라, 기억의 정치성과 권력의 문화적 실천이 구현된 물질적 결과물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삭제는 과거의 배제가 아니라, 과거를 구성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작동한다. 즉, 지워지는 것이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구성 행위가 되는 것이다. 팔림프세스트는 이처럼 기억의 통제와 구성이라는 이중 작용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기록 기술이며, 단순한 기록의 재활용이 아닌, 문화가 시간과 권력을 다루는 방식을 시각화한 복합적 기록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팔림프세스트는 단순히 남은 자리에 다시 쓴 것이 아니다

    팔림프세스트를 단순한 기록 매체의 재활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안에 내재된 삭제와 보존, 선택과 배제, 권력과 기억의 구조를 간과하게 만든다. 물론 자원의 재사용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존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엇이 지워지고, 무엇이 덧씌워졌으며, 그것이 어떻게 남아 있는가에 대한 복합적인 층위를 설명할 수 없다.

    팔림프세스트는 하나의 표면 위에 시간적 이질성과 의미의 겹침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구조이며, 그 자체로 기록의 물질성, 기술의 한계, 사회의 기억 체계를 동시에 반영하는 문화적 텍스트다. 삭제된 것은 단순히 사라지지 않고, 덧씌워진 것은 단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팔림프세스트는 지우고 쓰는 이중 행위가 만들어낸 시간의 지형도이며, 기록의 단순한 재사용을 넘어서 기억의 정치학과 해석의 유동성을 품은 복합적 구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